3. 혼인의 본질적 특성 (불가해소성)

 

 


   

  유명 소설가 중 한 분이 그의 수필집에서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나면, 첫째 아버지가 되지 않을 거고, 둘째 소설가가 되지 않을 거고, 셋째 누군가의 남편이 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가족과 소설로 삶의 대부분을 채우신 분의 말씀치고 너무도 역설적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버지와 소설가 그리고 남편의 역할이 결코 녹록치 않음을 강조한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헐떡이고 있지만 그래도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그분의 모습이 포착됩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역할이기에 결코 포기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는 결기까지 느껴집니다.
 
가끔 너무도 버겁다고 느껴질 때 이렇게 볼멘소리는 낼지언정 자신이 택한 삶을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는 완곡한 표현으로 들린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축복은 정오의 햇살처럼 그들의 머리 위를 언제나 밝게 비출 것이고 그들의 가슴은 마지막 날까지 뜨거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거룩한 제도인 혼인은 이렇게 인생을 치열하게 살 각오가 되어 있는 뜨거운 가슴의 사람들에게 허락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혼인은 두 가지 본질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이 그것입니다.
 
오늘은 불가해소성(不可解消性, indissolubilitas)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혼인은 만기가 없는 계약과 같습니다. 혼인계약을 통해 부부 관계가 형성되면 그들은 공동운명체로 바뀌고 서로에게 총체적 증여를 하겠다는 계약 내용은 실행됩니다. 이 계약은 기한이 없는 것으로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유효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부는 생을 마치는 날까지 서로에게 충실하고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며 희생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그 누구도 번복할 수 없는 혼인의 유대를 통해 안정성을 확보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 모두를 바쳐 일구어 낼 가정이 마치 도박판처럼 잃을 위험이 있는 것이라면 우리의 전인적 투신은 가능치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가정과 혼인의 안정성을 불가해소성의 유대를 통해 확보해 주심으로써 우리의 망설임을 확신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혼인의 책무를 버거워하며 만남과 헤어짐을 일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도 이혼을 합법화함으로써 그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혼인서약이 조폭들의 의리보다도 못한 것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헤어진 부부와 해체된 가정의 문제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자녀 문제 등은 이제 사회적 병리현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예언자가 되어 모범을 보일 뿐만 아니라 주님 말씀을 더욱 높이 외쳐야 할 때가 바로 지금 임을 절절히 느낍니다.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영혼의 의사이신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처방전입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6).


(출처: 천주교 춘천교구 법원싸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