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관면혼인(寬免婚姻)


 


   

  하루는 어떤 신자 분이 냉담 중인 딸과 손자들의 신앙문제를 걱정하며 제게 이렇게 말씀하ㄷㄷ셨습니다. “딸년이 쇼당에 걸려서 성당에 안 나오니 걱정이 많습니다. 손자들도 세례 받지 못한 채 지내고 있으니 이를 어쩝니까? 신부님이 해결해 주십시오.” 무슨 말씀인지 바로 이해했습니다만 고스톱 칠 때 사용하는 비속어 ‘쇼당’이란 표현이 재미있어서 미소 지은 적이 있습니다. 쇼당이 아니라 조당(阻撞)입니다. 장애라는 뜻을 지닌 옛말입니다. 어떤 분이 혼인 조당에 걸려있다는 말은 적법하고 유효한 혼인을 체결하는 데에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거하지 않은 채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모든 성사 은총을 받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혼인 장애를 제거시켜 주는 것을 관면(寬免)이라 말합니다. 관면(寬免, dispensatio)은 지켜야 할 법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권자가 그 적용을 해제시켜 주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법 제90조는 직권자가 “정당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관면해 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정당하고 합리적인 이유”라는 법적 표현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정당하다’는 표현은 직권자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의미와 “신자들의 공동의 이익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이중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직권자가 신자 전체의 유익을 염두에 두어야지 개인적인 관계나 호감 정도에 따라 자의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합리적’이라는 표현은 상황에 따라 적용되어야 할 법의 경중을 고려한 말입니다.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되어야 할 법의 탄력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비신자가 많은 경우에 미신자 장애를 관면하는 것은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장애는 관면이 불가능하기에 극복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성교불능장애나 혈족 장애 같은 것입니다. 차제에 자세히 설명드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관면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장애는 미신자 장애입니다. 미신자 장애는 가톨릭 신자가 세례 받지 않은 사람과 혼인하려 할 때 관면 받아야 하는 장애입니다. 관면의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세례 받은 가톨릭 신자가 가톨릭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충실히 할 서약과 앞으로 태어날 자녀들을 모두 가톨릭에서 세례 받게 하고 신앙교육을 시킬 것을 다짐하면 됩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교회에서 가르치는 혼인의 목적과 특성을 받아들인다는 전제조건도 충족되어야 합니다.

만일 가톨릭 신자가 불교신자와 결혼하면서 관면 받지 않았다면 그는 혼인 조당을 지니게 되어 모든 성사 은총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그 혼인은 교회법적으로 무효인 혼인입니다. 이 혼인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관면 받고 사제 앞에서 새로이 혼인동의를 발해야 합니다. 이를 단순 유효화 혼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비신자가 신자인 배우자의 신앙생활은 인정하면서도 본인은 사제 앞에 나오기를 거부한다면 또 다른 관면을 받아야 합니다. 이를 근본 유효화 혼인이라 합니다. 이 역시 차제에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지금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은 쇼당(?)이 있다면 본당신부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결코 ‘독박 쓰지 않고 나가리 시키는 방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출처: 천주교 춘천교구 법원 싸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