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쩌나?] (82) 무조건 받아들어야 하나요?



Q.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나요?
 신앙생활에 대해 잘 모르는 새내기 신자입니다. 그런데 가끔 성경을 묵상하면서 의문이 떠오르기도 하고, 본당 신부님 강론을 들으며 '정말 그럴까'하고 반문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선배 신자들은 "아직 믿음이 약해서 그런 것이다. 신앙은 한 오라기 의심하는 마음 없이 순수 그 자체로 믿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저는 그 말씀에 대해 공감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그래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외침이 있습니다. 제가 믿음이 부족해서인가요? 아니면 제가 가톨릭교회에 맞지 않아서 그런가요?
 
 

Q. 결론부터 말하자면 형제님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입니다. 믿음이 약하지도 가톨릭교회가 맞지 않은 것도 아닌 지극히 정상인 분입니다. 오히려 형제님에게 의심하지 말고 무조건 믿으라고 하는 신자 분이 병적 콤플렉스를 가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이 가지는 정신적 병리현상 중에 '내사(Introjection, 대상의 속성을 자기 것으로 동화시키는 것)'라는 것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펄스는 "사람은 자신의 공격성을 사용하는 것을 제지당하면 권위자의 행동이나 가치관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자기 안에 동화되지 않은 채 사람 행동이나 사고방식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렇게 심리적 부작용을 일으키는 타인의 행동방식이나 가치관을 내사라고 한다"고 정의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음식을 먹는데 씹는 과정 없이 그냥 삼켜서 위장 안에 음식물이 그대로 남아 체증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이렇게 외부 메시지를 자기 나름대로 생각해보는 과정 없이 무조건 받아들이면 첫째, 내사 때문에 고정된 행동패턴을 보이고 습관적이고 자동화된 행동을 반복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서 마음에 기쁨이 거의 없고, 고해성사를 보기 싫어서 성당에 간다고 하는 분들이 바로 이런 유형입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면 기도가 마음에 생동감을 주는 게 아니라 지루함과 무기력함을 제공하는 좋지 않은 현상이 생깁니다.
 
 둘째, 매번 자신의 다양한 욕구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고 내사된 것들의 명령에 따라 그것이 자기 자신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예컨대 종교적 가치관과 부모의 가치관, 사회적 도덕률을 지나치게 많이 내사한 사람들은 그 도덕적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로봇과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이들은 대부분 윗사람에게서 모범생이라는 칭찬을 듣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며 스스로 자기 인생을 만드는 창의적 삶을 사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자신이 책임지는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권위 있는 사람 혹은 집단이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라며 그것들을 비판 없이 받아들입니다.
 
 신자들이 작은 기도모임에서 자유기도 하는 것을 아주 부담스러워 하고 자기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겸손해서가 아니라 내사가 심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셋째, 관계 안에서 갈등이 심합니다. 즉, 심리적 자기고문게임을 하거나 대인관계에서 심한 갈등을 빚습니다. 외부 메시지를 씹는 과정 없이 그냥 삼키면 마음 안의 공격성(치아공격성)이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돼 자신을 비난하고 자해하는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에 대한 이해가 없다 보면 그런 갈등이 외부로 투사돼 다른 사람과도 심한 갈등을 빚게 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치아가 발달하지 않아서 씹어야 하는 음식물을 주지 않고 죽처럼 그냥 삼켜도 되는 것을 먹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성장했는데도 그냥 삼킬 수 있는 음식물을 주면 성장을 저해 받듯,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유아적 신앙기에는 그냥 믿어도 되는 신앙생활 패턴이 가능하지만, 신앙생활의 성장을 위해서는 나의 신앙 가치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음 안의 치아공격성을 사용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말씀들을 천천히 씹고 음미하고 소화시키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 마음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관계 안에서 여러 가지 콤플렉스가 형성돼 마치 나뭇가지가 어지러이 얽힌 숲과 같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신앙에 입문하게 되면 하느님 말씀과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하신 말씀이 식별되지 않고 동일시되는 현상이 생깁니다. 부모님 말씀을 복음말씀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만약 부모님 말씀이 건강한 것이 아닌 병적인 경우에는 점점 더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일상생활뿐 아니라 신앙생활조차도 성장하기는커녕 병적 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런 상태에서 빠져나오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말씀이 마음에 양식이 돼 영혼을 건강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인생의 덫이 돼 하느님께 가려는 발걸음을 제자리에 맴돌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깊은 생각을 하는 시간, 곱씹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형제님의 의심은 건강한 것이니 자신을 비하하지 마시고 지금의 자세로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하시길 바랍니다.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