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궁금증] 42. 나지르인은 어떤 사람인가?

하느님께 바쳐진 선별된 사람.

▲ 삼손과 들릴라. 페터 파울 루벤스. 1610년.



삼손은 자신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해 묻는 들릴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머리는 면도칼을 대어 본 적이 없소. 나는 모태에서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기 때문이오. 내 머리털을 깎아 버리면 내 힘이 빠져나가 버릴 것이오. 그러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처럼 된다오"(판관 16,17). 삼손은 자신을 나지르인이라 지칭한다.

 성경을 읽다 보면 '나지르인'이라는 말이 종종 나온다(아모 2,12; 민수 6,13; 마카 3,49). 나지르인은 하느님께 신비로운 은사를 입어 '주님의 영'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판관 13,25; 14,19; 15,14).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사람으로, '삼가다' 또는 '스스로를 봉헌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Nazar'에서 유래됐다.

 히브리말을 소리 나는 대로 옮긴 나지르는 속(俗)의 세계에서 뽑혀 성(聖)의 세계에 속하게 된 사람, 그렇게 해서 하느님께 바쳐진 선별된 사람을 가리킨다. 나지르인은 본래 자신의 의지보다는 하느님의 직접적 또는 간접적 부르심에 따라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누구든 원하면 특별한 서원을 통해 남녀 구분 없이 일시적으로 나지르인이 될 수 있게 됐고, 나중에는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려고만 하면 나지르인이 될 수 있었다(민수 6,1-21).

 나지르인이 되려면 세 가지 규칙을 지켜야했다. 첫째, 모든 종류의 술을 삼가야 한다. 팔레스티나 땅에서는 술을 주로 포도로 만드는데, 심지어 날포도와 건포도도 먹어서는 안 된다. 나지르인이 될 아기를 임신한 어머니도 출산할 때까지 술을 멀리해야 한다. 그들은 어떤 면에서 사제보다 더 큰 절제 생활을 해야 했다.

 둘째, 머리에 면도칼을 대서는 안 된다. 주님께 자신을 봉헌한 기간이 다 찰 때까지 그는 거룩한 사람이 돼야 한다. 그래서 머리털이 길게 자라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나지르인이 머리카락에 칼을 대지 않는 것은 '머리카락을 하느님께 헌신한 표'(민수 6,9)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것은 온전히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래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태어난 아이를 하느님께 봉헌하겠다고 서원하면서 "그 아이를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습니다"(1사무 1,11)하고 다짐했던 것이다.

 셋째, 어떠한 경우에도 죽은 이에게 다가서면 안 된다. 이는 부모나 형제가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성경의 사람들은 시체를 부정한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부정한 것은 하느님께 제사를 바친다거나 그분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이 세 규정을 지킨 나지르인은 봉헌하기로 정한 기간이 끝났을 때 만남의 장막 문간에 나와 각종 제물을 바치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불에 태웠다.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해 나지르인이 되는 풍습은 구약 말기와 신약 시대에도 계속되다 중세에 이르러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본래 나지르인은 금욕과 고행생활을 하도록 뽑힌 사람은 아니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으로서, 한평생 그분께만 충성을 바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 이 글은 평화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시리즈이며, 저희 본당 홈피에 옮김을 허락하여 주신 미주 평화신문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