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21세기로 향하는 교회


➃ 교황 바울로 6세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와의 만남: 교회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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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와서 에큐메니즘, 즉 교회일치운동은 프로테스탄트 개신교에서부터 먼저 시작되었다. 1910년 에딘버러에서 열린 프로테스탄트 세계선교회의(W.M.C; World Missions Conferens)를 통하여 선교지역에서 다양한 그리스도교 그룹들이 서로 아주 가슴 아프게 느끼게 된 것으로 인해 어떤 협동의 기반 아래 일치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교회는 프로테스탄트의 교회일치운동에 대해 처음에 매우 소극인 태도를 보였다. ‘세계교회’로 구성된 일종의 초교파적인 ‘초월교회’란 생각은, ‘하나이요 참되고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즉 베드로의 후계자들이 그 유일한 지도자라는 가톨릭 신조에 너무나 모순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가톨릭교회는 다른 수많은 개신교회들과 동등한 하나의 교회처럼 동석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 가톨릭교회 내에서 해가 흐를수록 다른 그리스도교 형제들과의 일치에 대한 관심이 점점 활발해지고 깊어졌다. 루터의 교회 개혁적 관심사에 대한, 또한 동서교회의 분열의 깊은 원인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숨김없는 만남과 대화의 기초를 마련하게 하였다.

 

맨 먼저 동방교회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가톨릭교회는 동방교회와 성사도 동일하고,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교의적인 기초도 동일하다. 동방교회와의 관계를 돌보기 위한 특별한 기관들의 설립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목적에 기여하였다. 

 

근세의 교황들도 동방에 몇 차례나 평화를 제의하기도 했으나 요한 23세 교황과 바오로 6세가 로마의 합법성의 주장을 의식적으로 포기하고, 과거 가톨릭교회의 과오를 시인함으로써 동․서교회의 다양한 대화가 시도되었다. 교황 바오로 6세가 예루살렘의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와 만난 것은(1964년, 1월 4일-6일)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두 분은 골고타에서 잘못의 시인과 상호의 포옹은 사실적인 동시에 상징적인 것이었고, 일치의 보다 나은 장래를 위해 아주 희망적인 것이었다. 

 

1949년 12월 20일자 교황청은 훈령「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하여」(De motione oecumenica)을 통하여 “참된 신앙과 참된 교회 안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재통합을 위해 극히 중요한 이 일은 더욱 더 모든 사목활동 중에 가장 탁월한 과업이 되어야만 하며, 하느님을 향한 모든 신자들의 줄기찬 기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최 발표는 교회 일치운동에 예상외의 자극을 주었으며, 2001년 발터 카스퍼(Walter Kasper) 추기경이 튀빙엔 대학에서 그의 명예교수 임명식 때 다음과 같은 의미 있는 연설을 하였다: 

 

“일치운동의 목표는 조직적인 교회연합이 아니라 다양성 안의 일치이며, 이 일치에 이르는 길은 가톨릭교회로의 개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로 귀의라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 가까이 갈 수 있게 서로 도와줄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더 가까워지게 된다.”

 

특히 가톨릭과 개신교는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 그리스도에 대한 공동신앙, 성경과 성찬례 그리고 세례에 관한 가르침,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조 등 고대 공의회가 채택한 교의들에 대한 일치된 고백과 같은 공동고백이 많다. 

 

또한 세상 속에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한다는 복음적 윤리, 인간의 구원은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의하여 가능하다는 고백, 인간의 원죄성과 구원과정에서 함께 체험하는 성령의 은총 안에서의 의화와 성화 그리고 종말적 성취와 인간생명의 영화, 만물의 회복과 종말적 성취 등 사도적 신앙전통을 통해 면면이 흐르는 본질적으로 중요한 대부분의 핵심교의에 있어서 가톨릭교회와 개신교사이에 다름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