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21세기로 향하는 교회


⑤ 까마라 주교와 로메로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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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 가운데 브라질 북동부에서 대주교 돔 헬더 까마라(Hélder Câmara, 1909-1999년)를 비롯한 여러 주교들 그리고 수도자들과 여러 가난하고 용기 있는 평신도들이 가난한 이들을 위해 복음을 선포했다. 또한 산 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Romero, Oscar Arnulfo, 1917~1980) 주교 같은 이는 1980년 3월에 미사를 집전하는 동아 살해당하기도 했다. 

 

먼저 돔 헬더 까마라 대주교가 사회복지사업으로는 가난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구의 10%도 안되는 엘리트 특권층들은 국민총생산량의 60퍼센트를 차지하여 부유하게 사는 반면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나 되는 4천 5백만 명은 36크루제리오(약 8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한 달을 살고 있었다.

 

가난은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것이며, 민중들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삶과 인권을 존중받으면서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복음화라는 자신의 신학을 실천하기 위해 까마라 대주교는 사회선교에 헌신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브라질 북동부 올린다와 레시페 교구의 대주교로 임명하여 까마라 대주교의 사회선교를 도왔다.

 

다음으로 산 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1977년 2월 22일 산 살바도르 대교구장으로 임명된 그는 보수적이고 현실참여에도 부정적이었던 그이 삶에 커다란 전기를 맞게 된다. 산 살바도르 대교구장으로 착좌하던 바로 그해 엘살바도르는 정치적 억압, 특히 노동자와 농민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극에 달해 있었고 이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투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대교구장으로 착좌한지 불과 20여일이 되던 3월 12일, 예수회 소속의 신부 한 명과 농민 2명이 피살됐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이른바 '회개' 혹은 '전향'의 계기를 맞게 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보낸 편지에서 로메로 대주교는 이러한 전향이라는 말에 대해 스스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부당한 것으로 지적하기 시작했고, 사회적 폭력이 증가하자 주일 미사 때마다 그 주에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을 호명했다. 그리고 "죽음 저편뿐만 아니라 여기 땅위에서도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나의 교회"를 그는 부르짖었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자연스럽게 권력과 무력을 지닌 이들로부터 격렬한 반감을 불러왔고 결국은 그를 살해하고야 말았다.

 

1980년 3월 24일 엘살바도르의 산살바도르 병원에 있는 천주의 섭리 소성당에서 거행된 미사를 거행하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폭력이 숨쉬기처럼 일반화되어 있는 나라"의 불의에 대항할 것을 강력하게 호소했다.

 

그 대가는 잔인했다. 강론을 마치고 미사를 마저 거행하던 대주교에게 4명의 무장 괴한으로부터 총격으로 피살되었다. 이미 예견되던 일이었다. 수시로 그를 향해 협박과 위협을 가하던 불의의 세력들에게 로메로 대주교는 말했다. 

 

"그들이 나를 죽여도 나는 엘살바도르 민중 안에서 부활할 것이다. 한 주교는 죽지만 하느님의 교회, 즉 민중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