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교회와 개혁


⑦ 예수회 창설자, 이냐시오 로욜라(Ignacio López de Loyola; 1492-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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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는 근대에 들어서 16세기 로마 가톨릭의 개혁운동에서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 수도회의 창설자는 바스크족 성 이냐시오 로욜라(St. Ignacio López de Loyola; 1492-1556)였다. 그는 청년시절을 나바라의 스페인 부왕 군대에서 장교생활을 하다가 30세 되던 1521년에 프랑스와의 팜플로나(Pamplona)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부모님의 집에서 오랜 병상생활을 하던 중 작센의 루돌프가 저술한 『그리스도의 생애』(Vita Chirsti)와 『황금의 전설』(Legenda aurea)를 읽으면서 내적회심을 체험하고 엄격한 참회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걸인의 복장으로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목표로 세우면서 우선 몽세라(Montserrat)를 순례했다.

 

그 후 몽세라에서 조금 떨어진 만레사(Manresa)에서 은둔생활(1522-1523)에서 관상과 참회를 통해 자신의 신비적 전환을 체험하였다. 여기서 그는 생각의 바탕을 그리스도 왕국에 두고 “모든 것을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Omnia ad maiorem Dei gloriam)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그의 영성은 유명한 「영신수련」(Esercitia spiritualia)의 기초가 되었다. 1523년 성지로 순례를 한 후 10년 동안 알칼라(Alcalà), 살라망카, 파리 등지에서 인문주의, 철학,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이 시기에 동료들에게 영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면서 파리에서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1534년 8월 15일 그는 6명의 동료와 함께 파리의 몽마르트 성모성당에서 청빈과 정결의 서약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이슬람인들에게 선교활동을 하거나 그것이 불가능하면 로마로 가서 교황의 지시에 따르겠다는 서약도 하였다. 파리에서 공부를 마친 이냐시오는 6명의 동료와 함께 팔레스티나로 향했으나 터키와의 전쟁으로 베네치아에서 1537년에 사제서품을 받고 로마로 향했다. 당시 이냐시오는 개혁적인 동료들과 함께 ‘예수회’(Compañia de Jesús)라 명명하고 신자들의 영혼구원과 병자간호에 헌신하기로 했다. 

 

로마에서 이냐시오는 수도원을 설립하기 위해 여러 어려움을 무릅쓰고 1539년 회칙을 완성하였으며 교황 바오로 3세는 1540년 9월 27일에 성직수도회로 인가하였다.

 

이냐시오의 놀라운 조직력과 훌륭한 통솔력으로 예수회는 급속도로 발전했으며 자신이 사망할 당시 벌써 브라질에서 일본까지를 아우르는 12개의 관구가 있었다.

예수회는 교황청의 특별한 후원을 받으면서 백성들의 선교와 외방선교 그리고 자선활동, 교육 및 신학연구에 헌신했다. 특히 1500년대 후반 독일세계에 있어서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반동종교개혁으로서 가톨릭교회의 교의(dogma)와 윤리(morale)분야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예수회가 가톨릭개혁을 위해 지닌 많은 장점들 중에서도 주목할 부분은 교육에 관한 것이다. 설립초기부터 여러 고등학교와 대학교 그리고 신학교들을 운영하면서 1559년부터는 스콜라 신학적 인문주의에 기초하여 학문연구의 방법을 도입했다. 이냐시오는 이미 1551년에 로마에 ‘로마대학’(Collegio Romano)을 설립하여 예수회 학문연구의 중심지가 되게 하였다. 이러한 교육사업의 모범은 트리엔트 공의회에도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