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교회와 개혁


⑧ 레판토 해전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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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레판토 해전의 승리는 1571년 10월 7일에 있었던 사건으로서 교황의 주도로 가톨릭 연합동맹군들이 당시 지중해로 몰려오는 터키군들의 진격을 멈추게 한 사건이다. 

 

1571년 10월 7일 베네치아 공화국, 교황 비오 5세 치하의 교황령, 나폴리와 시칠리아, 사르데냐를 포함한 스페인 왕국과 제노바 공화국, 사보이 공국, 몰타 기사단 등이 연합한 신성 동맹의 갤리선 함대가 이슬람 세력인 오스만 제국과 벌인 해상 전투로 오스만의 전투용 갤리선 함대를 결정적으로 패배시켰다.

 

전투는 4시 오후쯤에 결판이 났다. 오스만 함대는 약 210척의 함선을 잃었는데, 이중에서 117척의 갤리선과 10척의 소형 갤리선, 그리고 세척의 푸스타스는 별로 부서지지 않은 상태로 나포되어 기독교 함대는 이를 자신들의 함대에 편입시켰다. 기독교측은 20척의 갤리선이 파괴되고 30척이 심각하게 피해를 입어 분산되었다. 나포된 갤리선 중 오직 한척만이 오스만 군에 편입되었고, 나머지 함선들은 버려지거나 그리스도교군이 재탈환하였다.

 

전투 이후 신성 동맹은 일시적으로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였으며, 로마를 오스만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고, 유럽을 향한 오스만의 팽창을 저지하였다. 오직 노를 젓는 전함들만으로 치러진 이 마지막 중요한 해상 전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결정적인 전투 가운데 하나로 “레판토 전투 이후 세계를 움직이는 추는 다른 쪽으로 흔들리기 시작해, 부유함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해가서,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세계의 패턴을 갖추게 되었다.” 더불어 “중동과 유럽 사이의 계속된 다툼의 전환점이기도 했으며, 이는 아직까지도 완벽하게 해소되어있지 않은 상태이다.”

 

또한 이 전투는 15세기부터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지 않았던 오스만 군에게 궤멸적인 피해를 입혔다. 또한 그리스도교 세계의 절반에게 레판토 해전은 "그리스도교의 영원한 적"으로 여겨진 투르크 족의 몰락이라는 염원을 고취시켰다. 실제로 오스만 제국은 그 함선의 거의 대부분과 30,000명의 병사 거의 대부분을 잃었고, 서구 역사가들은 이를 기원전 31년의 악티움 해전이래로 가장 결정적인 해전으로 여기고 있다.

 

교황 비오 5세는 이 레판토 해전의 승리를 로사리오 기도를 통한 동정성모마리아의 중재덕분으로 돌렸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10월 7일을 ‘묵주기도의 동정 마리아 축일’로 전례력에 제정하였다.

 

그러나 중요한 승리에도 불구하고 신성동맹의 불협화음은 이 승리로부터 얻은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실패했다. 그리스도교 세계를 위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다르다넬스 해협을 공격하는 계획은 동맹군들끼리의 언쟁으로 없었던 것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 이후에도 이슬람군들은 1573년 키프로스를 점유하고 유럽을 무서울 정도로 위협하였기에 마치 전 지중해 해안에 대한 오스만의 힘에 따른 종주권이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