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바로크 시대의 교회


① 성모 마리아의 이콘과 야스나 고라(Jasna Gora)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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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서는 1500년 말기에 가톨릭개혁이 시작되었다. 이전에 터어키군과 러시아군의 침략을 영웅적으로 방어했던 도시 쳉스토호바(Czestochowa) 근처에 위치한 야스나 고라 수도원은 폴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성모님을 공경하는 순례지가 되었으며 끊임없이 많은 순례객들이 병자치유의 목적으로 찾아오고 있다. 예수회 회원들은 여기에 새로운 형태의 성직자와 평신도 양성소를 만들어서 여기서 양성된 사람들은 선교사가 되어 폴란드의 서민층들을 겨냥해 가톨릭신앙을 회복시키려 노력했다.

 

쳉스토호바 성모의 역사는 야스나 고라(Jasna Gora, 빛의 언덕)에 잇는 성 바오로 은수자회의 수도원이 공경하는 성모님 이콘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그러나 이 성화의 기원은 전설적이다. 일반 신자들은 이 성화가 성 루카가 그린 마돈나로 공경하는데, 그 이유는 성 루카가 성 가족의 집에서 예수가 직접 만든 키프로스제 탁자 위에다 성모 마리아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때 마리아가 예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들었으며, 그때 들은 내용을 나중에 루카 복음서에 기록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실제로, 이 성화를 조사해본 결과, 5세기 내지 8세기의 것으로 판명되자 그 열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그런데 이 성화는 신비스런 여행 끝에 이곳에 모셔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팔레스티나에 있다고 비잔티움으로, 그다음은 헝가리로, 또 우크라이나 지역의 루테니아(Ruthenia)와 벨즈성(Castle Belz)으로 그 후 폴란드의 쳉스토호바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리고 1656년 4월 1일 폴란드의 국왕 얀 카지미에슈는 르보브 대성당에서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를 폴란드의 여왕으로 선포하는 의식을 치렀다.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의 뺨에 생긴 두 줄의 상처에 관한 전설도 있다. 1430년에 후스파가 성 바오로회 수도원을 습격하여 수도원 안에 있던 성물들을 약탈하였는데, 도난품 가운데는 검은 성모상도 있었다. 후스파는 훔친 성모상을 수레에 싣고 떠나려고 하였지만, 말들이 도통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성모상 때문에 말들이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들은 성모의 초상화를 땅에다 내던져 버렸다. 그리고 후스파 일당의 한 명이 칼을 뽑아 초상화를 내리쳤으며, 성모의 얼굴에 두 줄의 큰 상처를 남겼다. 강도가 세 번째로 칼을 내리치려는 순간, 갑자기 땅에 쓰러져 고통으로 몸부림치다가 죽어버렸다. 그 후에 이 흉터를 없애려고 수많은 화가가 여러 번 시도하였으나, 그 상처들은 매번 다시 나타났다.

 

이 그림은 동방 정교회의 성화상에서 잘 알려진 전통적인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 성화는 ‘호데게트리아’ (길을 가리키는 인도자)로서의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속에서 동정녀는 오른손으로 구원의 원천인 아기 예수를 가리키는 손짓을 함으로써 자신을 향한 시선을 돌려 아기 예수를 주목하도록 하였다. 그녀의 옆에는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가 왼손으로 복음서를 들고 있고, 오른손은 앞을 향해 뻗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는 백합 문장이 있는 겉옷을 입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