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바로크 시대의 교회


➁ 원주민(인디오)들에 대한 박해 - 바르톨로메오 라스 카사스(Las Casas)

 

22.jpg

 

새로운 세계의 정복자들인 유럽인들은 아메리카의 토착민들을 노예처럼 부렸으며 불의하게 박해하였다. 그러나 바르톨로메오 라스 카사스(B. de Las casas; 1474-1566)는 멕시코의 치아파스(Chiapas)교구의 주교로서 원주민 인디오의 방어를 위해 노력한 인물로서 폭력사용의 부당함을 느끼고 거부했으며 일곱 차례나 고국을 왕래하면서 설교와 저술로 인디오들을 변호했다.

 

스페인의 도미니코회 회원이며 라틴아메리카의 인디언에 대한 위대한 보호자이고 역사가인 라스 카사스는 스페인 세비야에서 1474년에 소상인의 아들로서 태어나 법률을 공부한 후 콜룸부스(C. Columbus)의 1498년과 1502년의 항해에 그 비서로서 동행하였다. 그는 카리브해의 아이티섬에 식민자로 있을 때 인디언이 스페인인들로부터 잔혹하게 취급받고 있음을 알고, 인디언을 구하기 위해 스페인에 귀국, 신학공부를 한 후 사제가 되어 1510년에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였다.

 

라스 카사스는 인디언의 노예적 취급의 완화를 위해 헌신하다가 스페인인으로부터 박해를 당하자 1515년에 스페인으로 귀국하여 인디언 문제에 대해 변호하였다. 후에 인디언 보호관에 임명되어 다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1522년에는 산토 도밍고에서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였다. 그 후 다시 본국에 돌아가 인디언 보호법 통과를 위해 노력을 다하였으며 이에 당시의 스페인 왕이었던 카를로 5세는 1542년에 인디오들을 노예취급하는 것을 금지하며 원주민들과 스페인들은 동등한 평등권을 지닌다는 법을 제정하여 공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들은 여러 해 동안 소홀하게 취급되었다. 그는 1544~1547년 동안 멕시코 치아파스의 주교로 재임하다 스페인에 돌아가 바야돌리드(Valladolid)에서 1551년에 은퇴하였으며, 그 후는 문서로써 인디언의 권리를 변호하였다. 

 

당시 유럽의 노예신학자들과 그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사제들은 ‘정의로운 전쟁’론과 ‘자연노예’론을 받아들여 스페인의 군사적 제국주의와 강압적 선교 방식을 옹호했다. 그러나 라스 카사스는 원주민 노동력 착취자들과 정복자들을 비난하면서, 이들에게 고백성사의 기회조차 거부했다. 

 

그리고 1562년 84살에 이른 그는 이때까지 싸워 온 자신의 투쟁논리를 요약해 서인도위원회에다 보내어 약탈과 정복자인 스페인 세력을 아메리카에서 몰아낼 인디오들의 권리를 옹호하였다.

 

라스 카사스는 나아가 오늘날 인권법의 기초가 되는 화두를 다른 편지에서 요약하고 있다. “자연법과 규칙, 인권은 모든 민족에 공통된 것이다. 그리스도교인이든 이방인이든, 종파·법·국가·피부색에 관계없이 차별을 두어서는 아니 된다.” 마야 원주민들의 반란이 일어난 멕시코 치아파스 주에 있는 도시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San Cristobal de Las Casas)는 그의 이름을 기려 지어진 것이고, 이곳이 원주민 인권정치의 중심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권이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원칙이 된 21세기를 500년이나 앞서 살았던 위대한 선각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