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바로크 시대의 교회


⑤ 어떤 배의 내부에 있는 흑인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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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대 전체를 통하여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복음화가 널리 퍼져갔다. 그 증거로서 당시 유행하던 바로크 양식의 훌륭한 교회들이 적지 않았으며 오늘날도 이는 많이 남아있다. 특히 선교사들의 용기와 열성은 놀랍고도 영웅적인 것이었는데, 선교사들은 목숨을 바쳐가면서도 그 곳 식민지 세력들로부터 토착 인디오들과 흑인들의 존엄성과 노예처럼 이용당하는 것을 보호한 사실들이 적지 않았다. 성경에서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세상 모든 민족들을 자유롭게 하느님의 자녀로서 부르셨다.

 

한편으로 아프리카로부터 아메리카로 노예들을 교환하고 매매하는 일은 계속되었으며 또 번창하였다(노예매매는 1500년대 초부터 포르투칼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3세기 동안 5천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붙잡혀서 배에 가득실려 노예로서 팔렸으며 이들은 농노로서 또 광산의 노예로서 노동에 종사했다. 시민으로서 또 그리스도인들이었지만 욕심 많고 잘 조직된 유럽의 이 노예상인들은 근대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들은 장식했던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남미의 원주민과 아프리카 노예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했던 선교사들도 적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수많은 흑인노예들의 대변인인 예수회 회원 성 베드로 클라베르(P. Claver; +1654)는 40년 동안 뉴그라나다(콜롬비아)에서 활동하면서 수많은 흑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 외에도 예로니모 데 로아이자(Géronimo de Loayza), 베드로 데 라 뻬나(Pedro de la Peña), 돈 바스코 데 뀌로가, 성 투리비우스 몽그로베조(St. Turibius Mongrovejo), 후안 델 발레(Juan del Valle), 훌리안 가르세스(Julián Garcés), 주교 순교자 안토니오 발디비에소(Antonio Valdivieso), 도미니코회의 안토니오 데 몬테시노(Antonio de Montesinos), 프란치스코회의 토리비오 데 베나벤테(Toribio de Benavente), 성 루이스 버트란(St. Luis Bertrán), 성 프란치스코 솔라노(St. Francisco Solano) 같은 선교사들도 인디언 권리를 옹호한 인물들이 있었다.

 

이들은 원주민 노예화와 인구격감에 대처하기 위하여 1503년 인디오의 보호와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하는 조건으로, 정복자, 즉 군인이나 관리들이 왕으로부터 위탁받은 토지·인민사용권(엥코미엔다, Encomienda)제도를 발족하였다. 그러나 점차로 종신(終身) ·세습(世襲)의 봉건 영지화하는 한편, 금지된 토지매매(土地賣買)가 진행됨으로써 중남미 독립 뒤에도 많은 영향을 남기는 특이한 제도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중․남아메리카의 선교를 위해서 첫째, 정부의 허락을 받아 이루어진 마을로써 원주민 보호 정착지(Reducciones)가 있었다 이는 식민주의와 노예화에서 원주민을 보호하고 이들을 복음화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다음으로 사회발전과 문화를 진흥하고 교육과 자선에 관심을 둠으로써 선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