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절대주의와 혁명시기의 교회


⑤ 몬시뇰 폰 케틀러 대주교 - 노동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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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월에 칼 막스가 소위 '공산당선언'을 하자 독일 마인츠 교구의 대주교였던 빌헬름 임마누엘 폰 케틀러(Wilhelm Emanuel von Ketteler: 1850-1877)는 교회도 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급속한 산업화로 야기된 사회문제로 인해 추락된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자기 교구 내의 사목자들과 함께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가진 최초의 고위 성직자였다.  

 

폰 케틀러 대주교는 1848년 대림절 강론을 통하여 사회문제를 독일 가톨릭교회의 주요 의제로 부각시켰고 사회문제에 대한 책임이 교회에 있음을 호소하였다. 그는 1850년 이후 교회로 하여금 가난하고 고통 받는 하층민들의 공적인 변호사가 되게끔 만들었다. 특히 그가 1864년에 저술한 『노동자 문제와 가톨릭』(Die Arbeiterfrage und das Christentum)은 독일 가톨릭교회가 자선과 애덕사업 뿐만 아니라 사회단체들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무산계급자들을 도우는 데 영향을 주었다.

 

특히 1888년 가을 독일황제 빌헬름 2세의 로마방문 때 공업국가들에게 있어서의 어려운 사회․정치적 문제에 관하여 그들이 가진 간담회는 교황에게 노동문제에 대한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 후 교황 레오 13세(1878-1903)의 유명한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891; ‘노동헌장’이라 불림)가 나오게 되었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종래의 자선적인 조처에 국한되지 않은, 사회문제에 대한 가톨릭적 관심과 해결이 모색되었다.

 

이 회칙 「새로운 사태」에서 교황은 당시 마인츠의 대주교였던 빌헬름 엠마누엘 폰 케틀러와 프랑스의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의 노선을 따라 처음으로 공식적인 ‘가톨릭 사회론’을 전개하였다. 

 

이 회칙에서 교황은 당시의 사회문제를 네 가지로 진단하고 있는데 첫째, 재산권에 관하여 사유재산권은 인정되지만 재산권이 사회문제의 원인이 되며, 소수의 수중에 많은 부가 축적되는 문제, 증가하는 가난을 언급하면서 새로운 혁신을 호소하고 있다. 둘째, 국가의 중재로서 사회와 노동자의 문제에 대하여 국가가 중재할 것을 호소하되 사회주의적인 정신으로 중재할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적인 정신으로 개입해야 하며 과도한 개입은 금지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셋째는 임금의 본질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임금이 단지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고려될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측면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끝으로 노동자들의 ‘협회’를 결성할 것을 강조하면서도 아직 노동쟁의나 노동조합의 단계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한편 빌헬름 폰 케틀러 대주교는 1851년에 ‘천주섭리회’라는 수도회를 창설하였는데 우리 한국에서는 1963년 대전교구의 초청으로 1964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사회적 병폐로 인해 영혼과 육신이 점점 망가져 가는 사람들 특히 사회의 소외계층들 농민, 도시빈민, 노동자들에 대한 케틀러 주교의 지침 없는 헌신은 그를 “사회정의의 주교”라 칭하게 했으며 오늘날에도 독일 마인츠에서는 ’노동자의 날‘에 그를 기리며 경축하는 행사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