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인생.jpg   아래는 평화신문의 소개 기사입니다.



최인호의 인생- 문단 데뷔 50년 맞은 최인호 작가,

                    5년간 암투병기 담은 '작품집' 발간
                    작가와 환자의 경계선에 서서 깨달은 삶의 진리들


문단 데뷔 50주년을 맞는 최인호(베드로) 작가가 새 책을 펴냈다.「최인호의 인생」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뒤 오로지 글을 쓰는 소설가로 50년을 살아온 이가 들려주는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책은 그가 2008년 암 선고를 받고 수술대에 오른 뒤부터 썼던 글을 한데 모은 것이다. 지난 5년간의 투병기이자, 생(生)의 끝을 엄습하는 고통을 견디며 깨닫게 된 삶의 진리를 담은 그만의 일기다. 그는 이 책을 수필도 묵상록도 아닌 '작품집'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5년에 걸친 투병 생활 중에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글을 쓸 수 없는 허기였다"고 했다. 육신의 쇠락보다 문학적 죽음이 더 큰 충격이고 고통이었다.

"피어나지 않으면 꽃이 아니고, 노래 부르지 않으면 새가 아니듯, 글을 쓰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작가가 아니다. 그러나 창작은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이 요구되는 극한의 정신노동과 같은 것이다. 항암치료로 지칠 대로 지친 육체와 황폐한 정신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는 불가능한 희망이었다. 나는 내가 작가가 아니라 환자라는 것이 제일 슬펐다. 나는 작가로 죽고 싶지, 환자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64쪽)

그는 이를 악물고 때론 하느님과 성모님 앞에 울부짖으며 버텨냈고, 결국 '불가능한 희망'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항암치료로 빠진 손톱에 골무를 끼우고, 구역질이 날 때마다 얼음 조각을 씹어 가며 원고지를 채워간 지 두 달 만에 장편소설(「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2011년)을 발표했다.

그는 힘겨울 때마다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창피도 없이" 막무가내식 '떼' 기도를 바쳤다고 했다. '주님, 제 병을 고쳐주십시오', '주님, 기적을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제 병을 고쳐주시면 주님을 위한 글을 쓰겠습니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도가 주님과 벌이는 흥정이고, 조건부 협상이자 벼랑 끝 전술임을 깨달은 그는 '엿가락 기도'로 갈아탔다.

"주님, 이 몸은 목판 속에 놓인 엿가락입니다. 그러하오니 저를 가위로 자르시든 엿치기를 하시든 엿장수이신 주님 뜻대로 하십시오. 주님께 완전히 저를 맡기겠사오니 제가 그렇게 되도록 은총 내려주소서. 우리 주 엿장수의 이름으로 바라나이다. 아멘."(47쪽)

그는 또 김수환 추기경, 이태석 신부 등과 인연도 들려줬다. 김 추기경 선종 소식을 듣고 "일주일 내내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흘렸다"는 그는 김 추기경과 식사할 기회를 마다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항암 치료차 입원했던 병원에선 이태석 신부와 만났다. 이 신부 역시 항암 치료를 위해 입원해 있던 때였다. 하느님을 곁에 두고 고통을 이겨내고 있는 두 사람에겐 어떤 말이 필요치 않았다.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서로를 껴안았다. 쉽게 깨어지는 유리 제품을 조심스럽게 다루듯. 그리고 이별의 말도 없이 헤어졌다."(239~240쪽)

출판사를 통해 받은 책엔 그가 출판담당 기자에게 쓴 엽서가 동봉돼 있었다. 올해 작가 인생 50주년을 맞은 그에게 물밀 듯이 밀려올 인터뷰 요청을 예상한 듯했다. 피정 중이라 새 책을 펴냈음에도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여러분들과 함께 즐거운 잔치의 모임을 갖겠습니다"하고 썼다.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듯, 그가 피정을 끝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따뜻한 봄 어느 날, 즐거운 잔치의 모임을 꼭 열어줬으면 한다.

평화신문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